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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1/모임후기

20140913_두 번째 모임_돈이란 무엇인가?

<모임 개요>

1. 모임 일시: 2014년 9월 13일 오전 10시 ~ 12시
2. 모임 장소: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교육관 B111호
3. 모임 참석: 원종호, 황보린애, 홍석진, 이기범, 윤창현 (참석 순)
4. 모임 주제:  돈이란 무엇인가?


<독서 목록>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국내도서
저자 : EBS 자본주의 제작팀
출판 : 가나출판사 201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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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범위가 워낙 광범위했고,
논의하고 싶은 주제들이 워낙 많아서, 논의가 약간 중구난방한 측면이 좀 있었습니다.

정작 자본주의 이야기만 많이하고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이야기는 별로 하지 못했네요.

아직 시행착오이니 점차적으로 좀 더 좋아지겠죠?

다음 모임에서는 오늘 하다가 못한 위대한 경제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추가로 하고,
그렇다면 진짜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문학적/성서적 고찰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주의 논의된 토론 주제는 크게 4가지로 정리 할 수 있습니다.

1) 자본증식의 과정과 금본위제
2) 애덤스미스와 신고전학파 경제학
3) 칼 마르크스와 조셉 슘페터
4) 대한민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

1. 자본증식의 과정과 금본위제

다큐멘터리 EBS 자본주의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부분이
자본의 증식 과정을 굉장히 쉬위면서도 세밀하게 잘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본의 증식과정은 제로섬 게임이기에 결국은 의자놀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다큐멘터리의 결론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 증식 과정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모임에서는 이 중에서 금본위제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금본위제는 금의 가치를 기준으로 화폐의 가치를 매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신용을 담보로 추가로 화폐 발행을 하지 않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금은 희소가치가 크고 보존성이 좋기에,
오랜 시간 동안 실물 화폐로써의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특히, 식민지 개척시대에 금본위제는 무역을 위해서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국가간 무역을 하기 위한 통화 간의 거래를 금의 가치를 기준으로 산정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광대한 식민지를 통해서 세계 무역을 주도했던 영국은
각국의 화폐의 가치를 금의 보유량과 연동하는 금본위제를 절대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금본위제의 가장 큰 장점은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강한 억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돈이 많이 필요한 시점에 충분한 자금을 동원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됩니다.

금본위제의 한계를 가장 먼저 드러낸 것은 고대 로마시절입니다.

로마제국의 국가의 제정은 날이 갈수록 바닥을 치게 되자,
당시 화폐로 사용되던 은화를 은도금된 동화로 점차적으로 바꿔나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를 그레샴 법칙이라고도 부르는데 거래되는 화폐의 가치보다 
실제 화폐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부르는 것입니다.

한국어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는데,
실제 의미 보다는 왜곡된 의미로 인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Bad money drives out good if their exchange rate is set by law)

세계적인 무역을 활성화시키는데 기여를 했던 금본위제는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지면서 한계를 들어냅니다.

1차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재정지출이 늘어나고 파운드화의 화폐가치가 급락하자,
사람들이 앞다퉈 돈을 금으로 바꿔버리면서 급증하는 통화량을 맞추기 위해서 영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5년 영국은 금본위제로 다시 복귀하지만,
대공황으로 경기침체가 심해지자 1931년 금본위제를 다시 포기하였고, 경제적 패권 역시 미국이 쥐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3년 사적으로 소유한 금을 국유화하면서 금본위제를 폐기합니다.
대공황으로 디플레이션이 극심해지자 금본위제를 그대로 유지하기에는 어려운 지경에 다달은 것이죠.

하지만 이 시절까지만 해도 진짜 금을 가지고 오면 화폐로 바꿔주는 고전적 의미의 금본위제였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금본위제가 실시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브레턴우즈 체제가 형성되면서 부터입니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는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시키고
금과의 직접 교환은 중단되었으며 달러화를 국제 결제통화로 쓰기로 합의합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하는 상황에 다다르면서 다시 한 번 금본위제는 폐기됩니다.
베트남 전쟁과 과도한 재정지출로 달러의 가치가 급하락하는 시점에 다다르자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달러를 엄청나게 찍어내기 시작하면서 신용 대출의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금본위제 폐지 이후 부족한 재정을 채우기 위해서 달러의 통화량은 급증하게 되었고,
실물 가치와 상관없이 자본이 무한 증식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숫자상으로는 엄청난 부가 창출되게 됩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금본위제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미 금값에 비해서 너무 많은 통화가 풀려버린 상황이기에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경기가 침체되면 물가도 동반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은 사라지고,
달러가 부족하면 계속 찍어내면서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고 미국의 부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납니다.
(미국은 민간기관인 연방준비은행에서 돈을 찍어내기 때문에 돈을 찍어내는 만큼 미국의 부채는 동시에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돈을 찍어내는 양적 완화를 하지 않으면 경기가 멈추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에,
미국 정부는 어마어마한 빚을 지면서도 계속해서 양적 완화를 통해서 돈을 시장에 풀어놓고 있습니다.

실물 가치와 상관없이 화폐가 돌아다니는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금융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걱정이 늘어가고 있고,
점차적으로 기축통화로써의 달러의 위상은 나날이 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화폐전쟁>의 쑹홍빙은 금본위제의 폐지로 발생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현상의 위험을 지적하면서,
중국은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도록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금본위제로 돌아가는 것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너무 많은 통화가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금본위제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금본위제로 돌아가려면 지금의 통화들을 금 가격에 맞게 조절해야하는데, 이로 인한 혼란이 너무 큽니다.

실제로 얼마 전 미국 공화당에서 또 다시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아직까지 큰 진전을 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금본위제로 돌아간다는 것은 고정환율제도가 도입됨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되면 자유 무역에는 날개를 달아주고 환율정책에 의한 국가의 통제를 어렵게 만듭니다.

칼 폴라니의 경우에는 그렇기 때문에 금본위제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했고,
식민지 시대 금본위제에 기반한 자유 무역으로 인해 약소국은 더욱 약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금 생산량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고 산업용으로도 사용되기에,
증가하고 있는 통화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경기 침체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실제로 1차,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금본위제로는 통화팽창을 이룰 수 없음을 경험했습니다.)

실물 가치 이상의 돈이 돌고 있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본위제가 필요해보이지만,
당장 금본위제를 부활하기에는 이미 시중에 너무 많은 돈이 풀렸고 앞으로도 통제가 어려워보입니다.

더군다난 미국의 양적완화, 일본의 아베노믹스 등의 조치로
계속해서 돈을 더 찍어내고 있는 상황이기에 과연 자본주의가 어떻게 될지 미래가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금본위제 논의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금본위제의 폐지로 인해서 신용 금융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물이 없이도 돈을 찍어낼 수 있게 되면서, 현물이 없이도 돈을 마구 빌려 줄 수 있게 된거죠.

현대 사회에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신용 대출, 신용 카드 같은 개념은
만약 금본위제가 계속해서 운영되었다면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용 금융의 시대가 열리면서 돈이 풍부해지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으나,
자연스럽게 소비가 기아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경제의 급성장으로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1970년대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길이 너무 나빠서 차가 잘 움직이지 않게 되자 브레이크를 때버린 꼴입니다.

차는 잘 굴러가기 시작했고, 길이 좋아지면서 거침없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길이 안좋아지고 차들은 다들 너무 커져서 서로 부치면서 아슬아슬하게 운전하고 있는 상황이죠.

과연 이 상황에서 교통사고를 안내면서 이 지역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브레이크를 다시 장착해야하는가, 교통경찰을 부르든지, 못달리는 차는 아웃시켜버리든지...

어떤 방책을 써야하는지 아무도 결정하지 못한 체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고,
금본위제의 부활이라고 하면, 달리는 자동차에서 브레이크를 다시 붙여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험천만한 작업을 하면서, 상당한 희생을 낳을 수 밖에 없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감행해야 하는 방법인 것이죠)

역시 토론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금주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만 점검을 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습니다.
(아마 다담주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다시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듯합니다.)

+

2. 애덤스미스와 신고전학파 경제학


"자본주의는 애덤스미스를 왜곡했다.”

과연 EBS팀과 조형근 교수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것일까요?

애덤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윤리학자였고 당시 시대를 앞서나간 진보적인 개혁가였습니다.

중세 봉건제사회에서 절대 왕정으로 넘어간 시기,
근대화의 물결이 서서히 불타오르던 시기 세기의 명저 <국부론(1776)>이 출간되었습니다.

당시 길드와 협동조합에 의해서 시장은 독과점 상태였고,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이 시작되기 전이기에 생산량이 많지 않던 시기입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부자들이 재산을 뺏어갔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토머스 무어는 그래서 사회 질서와 제도를 고쳐서 이러한 빈부격차를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하지만, 애덤스미스는 정해진 생산물을 가지고 제로섬게임을 할 것이 아니라,
분업과 전문화를 통해서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그것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사회적 존재로써 도덕적 행동을 하기 때문에 함께 잘 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책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단 한 번 나오는데,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이루어질 경우 시장 내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게 되고, 이것이 오늘날의 '가격'의 개념입니다.

애덤스미스는 절대 왕정과 독과점으로 얼룩진 시장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자유로운 거래가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완전한 자유 시장 체제'를 주장한 것과 ‘가격’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을 주장한 것만 부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자유'의 개념과는 상대적으로 다르며 ‘가격'의 절대적 기능만을 신봉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애덤스미스의 이름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합니다.

애덤스미스가 많은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고자 책을 썼다는 의도는 뒷전에 밀리고,
그가 왜 이런 주장을 했는지에 대한 시대적 배경은 무시한 체 키워드만 파편적으로 따다 쓰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애덤스미스의 <완전 자유 시장 체제>와 <가격의 시장 조절 기능>개념은
이후 데이비드 리카르도, 토머스 멜서스 등의 학자들에 의해서 고전학파 경제학으로 발전하며,
레옹 발리스, 알프레드 마샬, 밀턴 프리드먼 등을 거치면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분업화와 전문화의 개념도 지금은 많이 다른 의미가 되었는데,
당시에는 분업화와 전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였고, 특정 인원들이 기술과 자본을 독과점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를 나눈다는 개념 자체는 굉장히 획기적이였고,
핀공장의 사례를 예를 들면서 이로 인해서 굉장한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너무나 심각하게 분업화되고 전문화되면서 노동이라는 것이 사람을 부품화시키게 됩니다.
특정 영역에 한정되어 숙달된 능력을 요구하게 되면서 큰 그림을 못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어버립니다.

이는 테일러리즘과 포디즘과 같은 과학적 관리법과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의 한계로 들어나게 되고,
인간을 부품화하는 것에 대한 한계가 들어나면서 근무 여건이나 환경은 다시 많이 개선되게 됩니다.

최근에는 팀중심 제도나 일본 도요타의 린 생산 시스템 등이 도입되면서,
생산자들의 분업화와 전문화를 특정 스킬에 특화된 부품화가 아닌 전체 그림을 보는 장인들로 다시 양성하게 됩니다.

학문 분야에서도 최근에 통섭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하기도 하고,
사회와 사람을 제외하고 효율성만 계산하던 경제학에서도 사람의 행동과 심리에 부족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결과로 최근에 부각되는 것인 행동경제학, 게임이론, 제도주의 경제학과 같은 분야들입니다.

+

3. 칼 마르크스와 조셉 슘페터

“공산주의는 칼 마르크스를 왜곡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1867)>은 산업화가 가속화되던 시기 저술되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살던 당시 도시 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누적되는 과로에, 심지어는 아동들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항상 가난했고, 자본가들은 항상 부유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산업의 특징도 주목해야하는데, 
본격적인 기술혁명이 일어난 것은 1880년대 철도의 개설 이후였고,
마르크스가 주로 활동할 때의 산업이라는 것은 대부분 노동집약적인 산업들이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파악하고 싶었고,
자본주의를 철저히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해서 분석해낸 책이 바로 <자본론>이였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의 삶은 고대 노예나 중세시대 농노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지배논리만 바뀌었을 뿐 계급화된 사회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였습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노동을 한 만큼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임금)만큼만 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추가로 일을 더하면서 생기는 잉여 가치를 자본가들을 착취할 수 있었고,
추가적으로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여 필요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잉여도 챙기게 되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점점 기계가 노동자를 대신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실업이 증가하고 임금은 더 떨어지게 되며 구매자가 감소하여 시장은 붕괴될 것이라고 보았고,
이러한 불황을 참다 못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 사회가 탄생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공동으로 소유하고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공산사회가 건설될 것이라는 예측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주의의 붕괴와 공산사회로의 이양이라는 부분은
자본론의 전체 내용 중의 16페이지에 불과하며 사실상 어떻게 공산사회를 건설할지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은 다루지도 않습니다.

공산당을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키고, 민중을 교육시키고 정권을 이양한다는
공산사회의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이후 레닌에 의해서 정교하게 완성되어집니다.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고도화가 자본주의의 붕괴로 이어진다고 보았고,
당시 농업사회였던 러시아에는 별로 맞지 않는 상황이였기에 레닌에게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예견은
오늘날 고장난 자본주의가 부각되는 현대에 더 걸맞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산업구조와 상황은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와는 굉장히 큰 차이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이 2010년대의 현실에서 재현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맹점을 잘 파고든 것이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토미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입니다.
(아직 모임 참가자 중 아무도 안 읽어본 책이기 때문에 다다음 모임의 필독서로 결정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이론이 완벽한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거의 1시간 가량의 시간을 마르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을 너무 오버해버려서 그것도 다 못 마치고 다음 모임에서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

일단, 조셉 슘페터의 지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조셉 슘페터는 부르주아의 수탈과 착취가 사실상 자본주의 성장의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슘페터는 부의 창출과 기업의 성장의 핵심을 ‘혁신’이라는 키워드에 두었고,
기술적인 혁신이 진정한 부를 창출해주며, 이로인해 생긴 이들은 기업가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이러한 부는 처음에는 기업가에게 집중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지막 멘트는 빼버리고, 
성공한 기업가에게 막대한 보상이 돌아가는 것이 맞다는 논리로 슘페터의 주장을 인용합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노동 착취로 인한 잉여가치보다
혁신을 통한 원가절감이나 새로운 가치 창출로 인한 잉여가치가 훨씬 더 크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의 산업들은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사실 마르크스의 설명이 더 적절했지만, 오늘날의 기준에서 본다면 슘페터의 주장이 더 설득력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라는 위대한 기업가가 계속된 혁신을 통해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냈고, 이러한 혁신을 통한 부가 가치 창출은 노동착취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아이폰의 대만 하청업체의 중국 공장에서의 엄청난 노동 착취가 발생했지만, 이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의 지식정보 산업사회에서는
과거와 다른 형태의 노동이 나타나고 착취도 새로운 형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공장 노동자보다는 사무직 노동자와 지식 근로자들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착취도 고민해볼 요소입니다.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의 이론이 한계를 가지는 점은
인간의 다양성을 너무 무시한 체 인간을 너무 이상적인 존재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가진 무지와 물질에 대한 탐욕, 그리고 자유롭고 싶은 욕망을 무시한 체
너무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만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사람이라는 변수를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실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국가에서 나타난
독재자의 등장과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태만, 비합리적인 인민 재판 같은 부작용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숙해서 붕괴되지 않는 
농경국가의 공산 혁명이라서 드러난 한계라고만 보기에는 너무나 부작용이 켰습니다.

이러한 부작용들에 대해서는 마르크스도 예상치도 못했을 것이
사실 마르크스의 연구 대상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르크스가 노동의 가치를 계산하면서
개인 별로 노동능력의 격차라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분석을 할 때는 일반적인 상황을 전제로 분석을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특수한 케이스 스터디를 진행한 것도,
통계적 방법을 활용해서 분석을 진행한 것도 아니기에 
방법론적으로 그러한 세세한 예외성을 반영할 수 없었다는 점은 인정해주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이 부분은 제대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개인적인 의견이 반영된 주장입니다.)

+

4. 대한민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마지막 주제는 마르크스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의 주제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저와 홍석진의 의견이 좀 갈렸는데요.

일단 홍석진의 의견을 간단히 정리하면,

1) 70-80년대 노동운동은 생존권 운동의 성격이 강했는데,
    지금의 노동조합은 귀족 노조화되고 이익집단화 된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

2) 파업이라는 수단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은 손해가 발생하는 것이기에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해야하는데 너무 파업이라는 수단이 남발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3) 프랑스나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들은 노동자의 의견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사업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성과를 내는 역할도 하는데,
    한국의 노동조합은 너무 임금 협상과 복지 개선에만 치우친 활동을 하고 있다.

4)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직원들이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노동조합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5) 최근에는 공장 노동자보다는 오히려 사무직 근로자들에게 노동조합이 더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훨씬 더 많은 야근과 스트레스에 시다릴고 있지만 노동운동에 나설 생각을 별로 안하는 듯 하다.

+

이에 대한 노동조합에 대한 저의 견해는
상당 부분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존재했습니다.
(아래의 정리된 내용은 논의 되었던 것 이 외에 추가적으로 내용을 정리한 부분도 있습니다.)


1) 70-80년대 노동운동은 생존권 운동의 성격으로 봐야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전태일 열사가 죽으면서 외친 소리는 “노동법을 준수하라”였고,
87년 노동대투쟁에서도 첫 번째 구호는 “두발 자유화” 두 번째 구호는 “복장 자유화” 였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나 임금 인상보다는 사람답게 대우해달라는 이야기를 먼저했고,
이는 당시 한국의 노동 환경이 마르크스가 살았던 노동자 착취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노동운동을 자꾸 이데올로기적 시각으로 분석하려는 시각도 많은데,
사실 당시 노동운동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투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독재에 투쟁한 것이고, 부조리에 투쟁한 것이지
노동 운동가 모두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며 공산주의자 취급하는 것은 단순한 색깔론에 지나지 않는다.

금서에 제대로된 번역서도 없던 시절이기에
제대로 <자본론>을 읽어본 사람도 없었으며 읽더라도 제대로 이해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공산주의 운동가들이 노동운동의 중심에 참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공산주의 운동보다는 생존권에 대한 투쟁의 성격이 훨씬 더 강했다고 본다.



2) 이후 귀족 노조가 등장했다는 부분에는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너무 과장된 측면이 있다.

모든 노조가 귀족 노조화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노조에서 노조 간부들의 부패가 발생하고 이익집단화된 것은 사실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남몰라라하면서 자신들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모습도 보여준 노조도 있다.

이러한 모습들이 노동운동측에 치명타로 다가왔고,
노동운동을 민주화 운동과 분리시켜 고립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모든 노조가 그런 것처럼 언론에서 몰아가는 모습에도 주목해야 한다.
일부 사례를 모든 사례처럼 포장하면서 노조 자체가 모두 부패하고 문제가 있다고 몰아가고 있다.
이는 노동조합을 싫어하는 경영진의 의중이 담긴 여론전의 성격이 다분하다.

이데올로기로 빨갱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버리고,
부패한 이익집단으로 몰아세우면서 점차 노동조합운동이 힘이 빠지게 된 측면이 존재한다.


3) 노동운동의 방식이나 파업의 형태가 아직도 80년대 스타일을 못 벗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노동운동을 하면 무조건 과격하고 공격적이여야한다는 의식이 남아있고,
사실상 그러한 모습들이 표면적으로 나타나면서 부정적 인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70-80년대 노동운동은 생존권 투쟁이였기에 그만큼 치열할 수 밖에 없었고,
강압적인 탄압에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했기에 악에 바쳐서 공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최근 들어 노조를 탄압하는 모습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 듯한 모습도 많이 보이지만, 그래도 시대가 많이 변했다.

노조에서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들이 오히려 새로운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젊은 신입 사원들의 경우에는 노조에 대해서 이러한 측면때문에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무조건 빨간띠를 머리에 두리고,
민중가요를 불러야한다는 인식에는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빨간띠가 노동운동의 상징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노동운동의 모습은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형성되면서 부정적 요소만 연상시키고 있다.


4) 파업이라는 수단은 노동자들에게도 최후의 보루이다.

기업이 어려워서 임금인상을 못하고 복지 혜택을 못주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기업 유보금을 쌓아두고 주주 배당도 하면서도 임금 인상을 하지 않고 심지어 인원 감축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래저래한 여러가지 방법을 가지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파업을 할때는 막무가내로 파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충분히 논의를 거쳐서 파업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측과의 협상을 시도해보고 이에 실패할 경우,
시일을 정하고 내부 구성원의 투표라는 절차를 거쳐서 파업을 결의하는 합법적 파업도 많이 존재한다.

과거에 막무가내식 파업의 관행도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많이 개선된 모습이다.
파업을 선택했는데도 협상에 실패한다면 노동조합은 더 이상 물러설 방법이 없기에 신중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파업을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현상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파업을 진행할 경우에도 굉장히 길고 지난한 싸움일 될 것이라는 각오를 하고 시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노동자들의 마지막 합법적 권리인 파업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5)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인식 속에 노동조합이라는 존재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있다.

“매우 과격하고 공격적인 성향들의 공장 노동자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임금 인상을 주장하며 파업을 하는 집단”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사측과 협상을 통해서 임금 인상을 챙취하더라도
사무직 근로자들은 고마운 마음은 갖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대변하며, 사측과 협의를 진행해 기업에 발전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일에서는 법적으로 노조의 대표가 이사회에 참석하게 되어있다.

비슷한 규모의 노조가 있는 기업과
노조가 없는 기업에 다녀보면 그 불편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외국계 기업들도 한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노조가 없는 것에 대해서
노동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취합하고 전달할 수 있는지 굉장히 의문시 했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노조 경영의 삼성전자에서도 심지어는
직원 대표를 선출직으로 뽑아서 직원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의사소통을 담당하게 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사측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가 되거나
직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면 어용노조와 마찬가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지식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자신을 노동자로 조차 여기도 않아왔었다.

노동자라하면 아직도 공장 근로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무직 지식 노동자들도 모두 동일한 노동자이며 업무의 종류만 다르다는 점을 명시해야한다.

시대가 바뀌고 노동운동이 오랜 세월 진행되면서
가만히 있으면서 사실상 더 많은 착취를 당하는 것은 오히려 사무직 노동자들이 더 심해졌는데 스스로 인식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결과로 많은 공장 근로자들의 업무 여건이 개선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일부 기업에 해당하지만...)

이 지적에 대해서는 홍석진의 의견에 동의하며,
사무직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연봉협상이나 야근 수당 같은 일상적인 부분에서 개선해나가야 한다.

연봉제라는 이유로 야근을 해도 수당이 없어진 것이 오래된 관행이 되고 있고,
연봉 협상보다는 일방적인 연봉 통보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정해진 급여를 지급받는 것이 현실이다.

싫으면 조용히 있다가 회사를 그냥 옮겨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기업입장에서도 이렇게 이직이 발생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손해이기에 이러한 기업 문화는 개선될 필요가 있어보인다.


6) 노동운동 진영뿐만 아니라, 경영진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한다.

아직도 회사를 내껏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직원들을 마치 하인 부리듯이 생각하는 오너들이 많이 존재한다.

함께 가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한다면 그렇게 직원들을 막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기업이라는 것은 자신이 자본금의 상당부분을 투자했더라고,
자본금만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며 사람이라는 존재는 숫자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직원들이 원하는 것을 잘 듣고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조합은 필요하고 노동조합을 사업을 발전시킬 파트너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영진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전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노동조합에 대해서 비난만 하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나태한 태도이다.

기업이 과연 누구의 것이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인식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려서
노동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주 자본주의나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은 언급도 못했습니다.

또한,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이야기, 
그리고 칼 폴라니에 대해서는 다음 모임에 다루기로 했습니다.

담 모임에서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해야할 듯합니다.

그리고, 이번주에 이야기하지 못한
돈과 자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인문학적/철학적/성서적 고찰에 대한 부분도 다룰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돈과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은
앞으로 몇 주 더 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할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다음 모임 필독서> - 9/27 (확정) / 고려대 LG포스코관 (오전 10 ~ 12시)

[필독] 경제학, 성경에 길을 묻다 - 권명중 (2008)

경제학 성경에 길을 묻다
국내도서
저자 : 권명중
출판 :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0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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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음 모임 필독서> - 10/18 (예정) / 광화문 언더우드 교육관  (오전 10 ~ 12시)

[필독] 21세기 자본 - 토미 피케티 (2014)
[참고] 거대한 전환 - 칼 폴라니 (2009)
[참고] 슈퍼자본주의 - 로버트 라이시 (2006)
[참고] 코드그린 - 토머스 프리드먼 (2008)
[참고] 자본주의 4.0 - 아나톨 칼레츠키 (2011)
[참고]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 폴 크루그먼 (2013)

21세기 자본 [사인본+해설서+양장 피케티수첩]
국내도서
저자 :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 장경덕 외역
출판 : 글항아리 201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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