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ason 1/모임후기

20141011_세 번째 모임_돈이란 무엇인가 2

<모임 개요>

1. 모임 일시: 2014년 10월 11일 오전 10시 ~ 12시
2. 모임 장소: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교육관 B111호
3. 모임 참석: 원종호, 권정민, 윤창현 (참석 순)
4. 모임 주제:  돈이란 무엇인가? 2부


<독서 목록>

 [참고] 노예의 길 - 프레드리히 하이에크 (1994)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국내도서
저자 : 김종배,조형근
출판 : 반비 2014.07.21
상세보기


금주는 자본주의 시리즈의 2번째 모임으로,
현대 경제학의 사상적 기초를 쌓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간이였습니다.

지난 모임에서 이야기했던,
애덤스미스와 칼 마르크스에 이어서
존 메이어드 케인스 - 조셉 슘페터 - 프레드리히 본 하이에크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1) 현대 경제학의 사상적 흐름
2) 케인스와 케인스 주의
3) 조셉 슘페터와 기업가 정신
4) 하이에크와 신자유주의

역시나 오늘도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부족하더군요…
추가로 준비했던 칼 폴라니의 이야기는 다음 모임에서 추가로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

1. 현대 경제학의 사상적 흐름

먼저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던 
애덤스미스에서 출발한 경제학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등장하기 전에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별로 필요가 없었습니다.
절대 왕정 하에서 거래라는 것은 이미 길드와 귀족들이 장악을 하고 있었기에 때문입니다.

애덤 스미스 이후로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민간 차원에서도 거래라는 것이 이루어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학문으로써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에서 출발한 고전경제학은
리카르도(비교우위), 멜서스(인구론), 존 스튜어트 밀 등 거치면서 점차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직면합니다.

19세기에 들어 약 50년간 경제학의 대세는
독일의 역사학파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학파로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됩니다.
(역사학파의 자유무역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주의학파의 노동가치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870년대에 들면서 신고전학파의 3총사라고 불리는
카를 멩거(오스트리아), 발라(로잔), 제폰스(영국)가 한계효용을 주장하면서 상황은 반전됩니다.

고전학파의 관점에서는 재화의 가치는 공급되는 공급가격(생산비용)이 결정한다고 보았는데,
한계효용의 관점에서는 재화의 가치는 수요자가 느끼는 효용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알프레드 마샬(케임브릿지 학파)은 
공급가격과 수요가격이 일치하는 곳에서 균형가격이 결정된다는 미시경제학의 핵심개념을 완성합니다.
(중고등학교 경제 수업 시간에 보던 그 그래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프레드 마샬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경제학 개념들을 잘 정리해 <경제학원론(Principles of Economics)>라는 책을 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경제라는 분야는 정치학이나 철학과 함께 다루어졌는데,
알프레드 마샬은 사회와 제도, 관계 등의 설명하기 어려운 변수들을 모두 빼고
합리적 인간들이 존재하는 완전 경쟁 시장을 가정한 상황에서 경제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시경제학이라는 분야의 탄생이며,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독립된 하나의 학문으로 완성되는 계기가 됩니다.

미시경제학이라는 분야는 아직도 주류 경제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상태를 가정한 체 복잡한 수학적 모델을 주로 활용했다는 한계를 보이게 됩니다.
(결국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며, 최근에는 현실적인 요소를 고민하는 다양한 비주류 경제학이 주목을 받게 됩니다.)

신고전주의라고 하면 흔히 알프레드 마샬의 케임브릿지 학파를 지칭하지만,
자유주의적 성향이 더 강하던 오스트리아 학파나 수리 경제적 성향이 강하던 로잔 학파 등
당시 경제학적 주류를 형성하던 관점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됩니다.


이후 대공황을 거치면서 케인즈주의가 등장하며
거시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생겨나게 되었고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독주는 제동이 걸리게 됩니다.

정부의 시장 개입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시장이 생각보다 합리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죠.

이에 폴 새뮤엘슨은 신고전파의 미시적 시장 균형 이론과 
케인즈의 거시경제 이론을 접목시켜 신고전파 종합이론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폴 새뮤엘슨이 1948년 집필한 <경제학(Economics)>은
맨큐의 경제학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인기있는 대학 교재였고 아직도 잘 팔리고 있는 고전입니다.

폴 사뮤엘슨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으며
1950~ 1970년대 경제학의 대세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후에도 케인스학파의 대표주자로 밀턴 프리드먼과 대립합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시작된 스태그 플레이션은 새로운 경제학의 등장을 요구하게 되었고,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하는 시카고학파는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신자유주의라는 조류를 형성합니다.

1980년대 대처리즘과 레이건노믹스로 힘을 받은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날개를 단 듯 세계를 점령해버렸지만,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시장을 너무 믿은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도 문제는 있어보이고,
그렇다고 시장을 이대로 나누기도 애매하고 어찌할바를 몰라 현재는 사실상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직은 주류 경제학의 자리는 신자유주의 후손들이 굳건히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신케인스주의, 신제도주의, 행동경제학, 생태경제학, 사회적 경제 등 다양한 관점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세계 경제 위기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다음 모임에서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이론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2. 대공황을 이겨낸 케인스주의 - 거시경제학의 등장

두 번째 다룬 주제는 
신고전학파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온 케인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잘 알려진대로 케인스는 케임브릿지 출신이고 알프레드 마샬의 제자입니다.
무늬만 봐서는 신고전학파로 보이지만 그는 학창시절부터 주류 경제학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였습니다.

굉장히 독특한 행동을 자행하던 괴짜 엘리트였고,
알프레드 마샬에 의해서 정리된 미시경제학의 견해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었습니다.

다소 독특하면서도 거만하기도 했던 케인스는
아무도 대공황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 원인을 찾아 헤매고 있던 시절에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1936)이라는 다소 거만한 제목의 책을 내면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이론이 아니라 일반 이론을 제시하겠다는 그의 견해는
비합리적인 군중들의 행동을 통해서 대공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합니다.

미시경제학자들이 왜 대공황이 일어났는지 원인 찾기에 바쁜 시점에
케인스는 그 복합적인 원인을 분석하기 보다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진단합니다.
 
케인스가 보기에 당대의 가장 큰 문제는 수요가 부족한 것이였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투자를 해야하며, 사람들이 저축해둔 돈을 풀도록 유도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에서 일시적으로 엄청난 돈을 풀어 시장에 충격을 주면 돈이 돌게 만들면,
이에 자극을 받은 소비자들도 저축해둔 돈을 풀게 되면서 시장이 회복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러한 맥락에서 뉴딜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사회 기반 시설을 짓는 것도 진행했지만 엄청난 사회 복지를 도입해서 돈을 쏟아부어버립니다.

하지만, 정착 케인스가 주장한 엄청난 소비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소비를 거치게 되면서 쌓아있던 재고는 완전히 사라지고 경제는 살아나게 됩니다.

이후 폴 새뮤엘슨이 완성한 신고전주의 통합(케인스 + 신고전주의)의 견해는
1950년대 이후 황금기를 맞이하다가 1970년대 등장하는 신자유주의적 견해에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스의 방식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어보이지만,
사실상은 속임수에 불과하고 아무런 효과가 없기에 지속적으로 충분한 통화가 흐르게만 놔두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밀턴 프리드먼은 심지어 중앙은행도 별 효용성이 없기에 없애야한다고 까지 이야기합니다.)

사실상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합니다.
이에 폴 사무엘슨은 칼럼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반박하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1990년대 공산권의 몰락으로 신자유주의는 완승을 거둔 듯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케인스는 신케인스주의자들(폴 크르구먼, 맨큐 등)에 의해서 다시 무덤에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케인스의 정부 개입이라는 방법은 마르크스만큼 시장 자유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았고,
지금도 경제학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치인들에 의해서는 굉장히 선호되는 논리 중 하나입니다.

정부의 힘이 강하게 작동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며,
케인스식의 정책 공약은 자국민들의 표를 끓어모으기에 아주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선거때마다 나오는 개발공약과 복지정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제임스 뷰캐넌의 경우에는 공공선택이론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케인스주의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악용을 경고하며 시장자유주의를 옹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규제받지 않는 자본가들의 과대한 욕망이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대공황을 통해서도 나타났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증명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케인스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동시에, 케인스식의 선동이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정보가 공개되는 시대에 정부의 충격요법은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정부의 개입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게 과연 장하준 교수처럼 적극적인 개입일지, 아니면 다소 소극적인 개입일지,
아니면 칼 폴라니의 주장처럼 아예 시장에 대한 관점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것일지는 고민해야하는 상황입니다.

근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점은
'시장이 완벽하지 않다.’ 라는 주장에 대해서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에크도 동의하는 점입니다.

+

3. 파시즘의 공포와 냉전에서 자유를 찾다! - 하이에크

토론에서는 케인스와 동갑내기인 슘페터 이야기를 먼저 했지만,
글로 정리하다보니 논리상 하이에크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해서 순서를 바꿨습니다.


하이에크는 앞에서 이야기한 오스트리아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공부한 오스트리아학파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 학파는 케임브릿지 학파와 함께 양대 쌍벽을 이루었지만,
학문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기에는 결과물도 많지 못하고 흐름도 끊어졌습니다.
(카를 맹거와 루드리히 폰 미제스, 머레이 로즈버드 등은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그 이후로는...)

흥미로운 것은 당대 오스트리아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보면,
굉장한 인물들이 많지만 오스트리아학파와 관련성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셉 슘페터의 경우에는 오히려 스위스 로잔 학파와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프레드리히 폰 하이에크도 오스트리아학파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색깔이 다소 다릅니다.

칼 폴라니의 경우에는 하이에크와 완전 대척점에서 사회적 경제의 기초가 되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고,
피터 드러커의 경우에는 경영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스트리아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연구한 방향성도 너무나 다르고 사실상 활동도 주로 미국에 건너가서 했습니다.
(칼 폴라니는 헝가리 출신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한 케이스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배경에는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상황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젊은 시절을 오스트리아에서 보낸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고 파시즘에 휩싸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시 1차 세계대전의 충격이 체 가시기 전에 유럽에 불어닥친 파시즘의 열풍은
공산주의 확산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공산주의가 러시아라는 동쪽 변방의 농업국가에서 혁명을 일으킨 것이라면,
나치즘과 파시즘은 독일과 이탈리아라는 유럽의 중심에서 굉장히 큰 파급력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패전국의 충격과 자괴감에 빠진 독일 국민들에게
엄청난 전쟁 배상금과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충격은 메시아를 기대하게 만들었고,
히틀러의 나치즘은 사실상 종교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고 가시적으로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러한 전체주의의 창궐은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되었고,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뿌리가 같다고 생각한 하이에크는 파시즘의 열풍에서 자유주의를 지키고자 합니다.

하이에크 역시 시장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라는 정보가 제대로 전달된다면 시장 내에서 자생적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효율적 자원 배분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적 자유의 보장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했고,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의 길을 걷는 것은 스스로 노예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 주장했던 것입니다.
(당시 시점에서보면 파시즘과 공산주의에서의 인민들은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44년 출간된 <노예의 길>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지만,
케인스주의에 의한 경제 회복으로 그의 주장은 큰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케인스주의의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한 1970년대 하이에크는 다시 주목을 받게되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스웨덴의 군나르 뮈르달과 함께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게 됩니다.

정부차원의 강력한 경제 정책을 주장하던 스웨덴의 군나르 뮈르달과 
노벨경제학상을 함께 공동 수상했다는 점은 아직까지 학계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자유주의적 사상은 밀턴 프리드먼이나 로버트 루카스 같은 학자에 영향을 주었고,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흐름과 1990년대 공산권의 몰락으로 최후의 승자인듯 보였습니다.
(노벨경제학상도 1974년 하이에크, 1976년 밀턴 프리드먼 이후로 2000년까지는 시카고 학파가 휩쓸었습니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그의 라이벌은 케인스나 스웨덴의 뮈르달이였지만,
사상적인 측면에서 그의 라이벌은 칼 마르크스였기에 하이에크는 완벽한 승리를 경험한 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하이에크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서부터 시작된 계속해서 터지는 금융위기를 경험했다면, 
그리고 결정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서 신자유주의가 비판받는 것을 목격했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유주의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그가 그토록 비난했던 전체주의처럼 새로운 비극을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대목입니다.

+

4. 케인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또 하나의 천재 - 슘페터

케인스는 나름 다양한 라이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본인은 아무도 라이벌이라고 생각 안했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비교하길 좋아하니까요.


생존했을 당시에 케인스는 슘페터와 자주 비교가 되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사망한 1883년 태어난 점도 동일하고 사상적으로도 논쟁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케인스는 하이에크와 비교되기도 하고 밀턴 프리드먼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경제학자로써 본다면 사실 밀턴 프리드먼과 비교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비교일 듯합니다.

하이에크는 정치적 사상적 측면이 많이 강조되기에 
오히려 칼 마르크스나 칼 폴라니와 비교되는 것이 좀 더 어울릴 것같다는 것이 저의 소심한 주장입니다.
(EBS <자본주의>에서는 애덤스미스 vs 마르크스 / 케인스 vs 하이에크 구도로 잡았습니다)

+

암튼 슘페터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면,
슘페터도 마르크스와 비교되기도 하고 케인스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일정 부분 마르크스나 케인스와 대척점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미세한 부분들에 대한 것입니다.

슘페터의 발상은 자신이 주장한 창조적 파괴처럼 굉장히 혁신적인 내용이였기에,
그의 주장을 먼저 살펴보고 세부적인 사항에서 다른 학자들과 비교하는 것이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슘페터는 최근 들어서 인기가 부쩍 늘면서 동시에 가장 많이 왜곡되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슘페터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내부적인 역동성입니다.
슘페터는 다른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을 고려해 움직임과 변화에 주목합니다.

그것도 경제 체재 내부에서 발생하는 혁신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본 것입니다.
마차에서 철도로 운송수단이 돌변하는 비연속적인 변화, 즉 혁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슘페터는 불황을 호황에서 불황으로 이어지는 경기 순환의 한 단계로 보았기에,
불황은 호황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며, 기업가의 혁신을 통해서 불황을 호황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슘페터는 케인스식의 시장 개입에 대해서 반대했고,
케인스 식으로 유효 수요만 늘리는 것은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고 불황을 그대로 방치해서 모두 고통받아야 한다고 무책임하게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슘페터는 이러한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혁신을 일으키는 사람을 기업가라고 보았고,
이들은 단순히 돈을 벌려고 하는 사업가가 아니라, 혁신을 즐기며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노동자가 추가로 노동하면서 발생한 잉여가치와 생산성 향상으로 발생한 특별 잉여가치 중에서
자본가가 착취한 잉여가치에 주목했다면 슘페터는 혁신을 통해 발생한 특별 잉여가치에 주목한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자본가가 착취한 잉여가치를 
계급투쟁을 통해서 노동자에게 나눠야한다는 것에 주목했다면,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활동을 통해서 특별 잉여가치를 많이 만드는 것에 주목한 것입니다.

슘페터의 기업가의 혁신은 단순히 제품 생산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재화의 발견, 새로운 시장의 개척, 새로운 공급원의 확보, 새로운 조직 형성 및 파괴 등
산업과 관련된 모든 생산 과정에 주목하였고, 이는 오히려 오늘날의 경영학적 견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로 인해 발생한 이익에 대해서
초엘리트적 기업가가 일정한 보상을 받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는 다시 혁신을 위한 재투자로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혁신으로 인한 수혜가 모든 사회에 퍼지게 되고,
기업가 스스로는 더 이상 추가적인 이윤을 누리지 못하게 되기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견해입니다.
(오늘날 지적 재산권과 특허권 논쟁에서 슘페터의 견해로 본다면 완전히 말도 안되는 권리 주장인 것입니다.)

슘페터가 주장한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러한 도전을 계속해서 즐기면서 사회적인 부를 창출해내는 것이였습니다.

슘페터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계속해서 도전과 모험을 즐기면서 끝없이 교체되어 나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슘페터가 이야기한 추가적인 보상에만 주목하고,
혁신이라는 것을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슘페터가 이야기한 기업가는 스티븐 잡스처럼 끝없이 혁신을 추구해서 사회에 이익을 주는 사람이지,
대한민국의 대기업 총수들처럼 끝없이 돈벌 궁리만 하면서 찍어내듯이 돈되는 상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슘페터는 아무런 혁신없이 자산을 상속하거나 돈놀이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경멸했다고 합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에서
자본가의 탐욕으로 창조적 기업가가 몰살 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자본주의는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결국은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사실상 슘페터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굉장히 옹호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마르크스의 실증적인 분석방법과 역사에 대한 경제적 해석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이를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견해에 비춰보면 슘페터가 마르크스를 비난했다고 보기에는 좀...

슘페터가 우파적인 삶을 살았고,
엘리트에 대한 끝없는 동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탐욕한 엘리트를 경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슘페터는
탐욕할 엘리트에 의해서 악용되고 있습니다.
토론 시간에도 슘페터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슘페터가 이야기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에도 존재하고,
이러한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은 안정된 사업 운영보다는 새로운 혁신에서 쾌감을 느낍니다.
(얼마 전 강연을 들은 한 사회적 기업가도 새로운 사업을 창업해서 성공시키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국가 지원의 창업 교육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경영이나 사업을 하고 싶어하고 안정된 산업 분야를 고민하는 분위기라면,
젊은 사람들은 파트너십 위주로 사업에 도전하고 서비스업 중심으로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슘페터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는 것은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기업가들의 긍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익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라는 화두가 나오면서,
기존의 기업가 정신과는 다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근본은 동일한 개념입니다.

사회적 서비스와 관련된 분야에서만 사회에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업을 하든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기업가 정신이 가진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 노력하는 엘리트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꾸고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기업가인 것이죠.


+

원래는 칼 폴라니까지 하려고 했으나…
역시 시간 관계상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다음 모임에 몰아서 해보겠습니다.

워낙 다향한 견해가 많아서 이걸 다 다룰 수는 없고,
가장 대표적이며 요즘 가장 뜨고 있는 두 명만 집중해서 다루겠습니다.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으로 가장 핫한 인물 토미 피케티
사회적 경제의 사상적 기초를 정리했다고 평가받는 칼 폴라니

무려 두 책이 나온지 70년의 격차가 있지만,
굉장히 방대한 역사를 분석해서 책으로 냈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안타깝게도 책의 두께에서도 비슷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둘 다 너무 엄청난 책이라서 
다음 모임까지 두 권을 모두 읽어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은 되지만,

일단은 도전해보고,
안되면 칼 폴라니는 다음 기회로 미뤄서 사회적 경제 특집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언제든 일정과 내용은 
상황에 따라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Open Project 이니까요~ ^^


<다음 모임 필독서> - 11/1 (예정)

21세기 자본
국내도서
저자 :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 장경덕 외역
출판 : 글항아리 2014.09.12
상세보기


[필독] 21세기 자본 - 토미 피케티 (2014)
[필독] 거대한 전환 - 칼 폴라니 (2009)
[참고] 슈퍼자본주의 - 로버트 라이시 (2006)
[참고] 코드그린 - 토머스 프리드먼 (2008)
[참고] 자본주의 4.0 - 아나톨 칼레츠키 (2011)
[참고]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 폴 크루그먼 (2013)


<다다음 모임 필독서> - 11/15 (예정)

사회혁신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하며, 어떻게 추진하는가
국내도서
저자 : 김영수,제프 멀건(Geoff Mulgan)
출판 : 시대의창 2011.06.20
상세보기


 [필독] 사회 혁신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하며, 어떻게 추진하는가 - Geoff Mulgan (2011)
 [필독] 임펙트 비즈니스 - 니콜라 아자르 (2013)
 [참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복지 (The third sector) - 장 루이 라빌 등 (2008)


* 본 내용은 순수히 스터디 모임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기에, 내용상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에 대해서는 댓글로 의견을 주시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